인사말

홈페이지를 찾아주셔서 반갑습니다.
무명사·회룡선원과 인연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명사·회룡선원은 꿈 속에서 목이 부러진 돌부처님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금정산 아래 도심 속 무명사와 무명봉 아래 회룡선원은 다겁생의 인연으로 맺어진 인과로 인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생들이 약사여래부처님께 귀의하여 복을 쌓고 업을 닦으며, 그 공덕으로 현세의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기도도량입니다.

약사여래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고통에서 바른길로 인도하시겠다는 대원을 세우신 분입니다.

현재 삶이 지치고 외롭고 힘든 분들은 혼자 괴로워하거나 좌절하지 마시고, 약사여래부처님께 귀의하여 삶의 용기와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 인연이 되시는 분들은 무명사·회룡선원에 오셔서 약사여래부처님께서 배풀어 주시는 무량공덕을 직접 체험하고 함께 내 안의 참된 불성을 밝혀 봅시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약사여래불!
회주 설국 무명 합장

사단법인 한국불교조계종 제3대 종정
설국 무명 대종사

종정 취임 인사말
침묵의 천둥소리
크게 죽어야 크게 산다.
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종정 취임에 앞서 희망을 기원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금 국민의 삶은 “코로나19”와의 기나긴 시련 앞에 생명과 일상이 여전히 위협받고 유사 이래 민생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되어 자비의 구름을 일으켜 단비(甘雨) 번뇌의 흐른 땀을 식혀줄 선지식이 절실한 때입니다.

불자 여러분!
우리 불자들은 함께 코로나를 이겨낼 것입니다.
코로나 신종 감염병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인류사회의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직접 대면하여 종교생활을 구축하는 종교계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어 코로나19를 극복해도 예전의 대면문화로 대표되는 완전한 일상의 복귀는 힘들 것이며 그동안 유지해온 종교가 모든 기성의 영역에서 변화와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문화 역시 세상의 소통과 문화를 만들어 가는 근저에 온라인 중심의 디지털 문명이 흘러가는 현상을 적극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이러한 주류 문화를 우리가 수용하고 활용해서 전향적으로 변화를 도모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한국불교는 소통 속에서 멀어져 “외로운 섬” 내지는 “과거의 만화현상”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불자여러분!
현재는 모두가 어렵고 힘든 일상입니다.
또한 온 국민들도 일년내내 불편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자들은 불심(佛心)으로 꺽이지 않고 위기 속에서 불교는 오히려 빛났습니다. 전국사암에서 코로나19 퇴치 기원법회와 자발적인 헌신으로 환자를 돌봤고 불자들은 스스로 방역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위기 속에서 오히려 빛났습니다. 전국 산사에서 자발적으로 구상한 창의적인 방역조치들은 신속하게 현장에 적용되었습니다.
우리 불자들의 원융회통과 상생정신은 사회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가장 큰 힘이 되었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과 함께하는 길을 찾았습니다.
대한민국 불자들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국민모두가 어려움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전국불자들의 자비공덕 회향으로 이제는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입니다.
불자여러분! 우리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온전히 일상을 회복하고 새로운 시대의 선도국가로 도약해야 합니다. 또한 마스크에서 해방되는 평범한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지난해 우리는 우리 사회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2021년 우리종단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원융화합과 도약입니다. 거기에 포용을 더하고 싶습니다.
우리 한국불교조계종은 원융과 포용과 도약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갑시다.
경(經)에 이르길 “화합은 상생하는 연기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했습니다.
또한 하심을 통해 아상을 버리고 서로가 내려놓음으로써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종단의 구성원은 불(佛), 법(法), 승(僧)과 사부대중입니다. 사부대중이 각자의 소임과 역할을 여법히 수행할 때 서로가 회통과 소통으로 상호를 인정하는 상구보리하화중생의 공동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한국불교조계종의 종지는 자각각타, 각행원만,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입니다. 수행가풍과 승풍을 진작하고 대중공사에 기초한 종단쇄신과 함께 종무행정시스템 개선 및 종단재정 안정화에 종책방향을 선도하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우리 한국불교조계종은 전국 각처의 선불장(禪佛場)에서 수행정진으로 자비의 등불을 올려 불조의 혜명을 잇고 종단의 사회적 역량을 강화하여 불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 노력하겠습니다.

불자 여러분!
종도와의 약속은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
소납을 위시로한 종정 취임은 실로 위중한 시기에 지대한 책임감으로 소임을 시작합니다. 종도와의 약속을 무엇보다도 최선을 다해 지킬것이며, 이를 위해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한국불교조계종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고 변화와 혁신을 통해 백년대계의 미래불교를 열어가는 대망의 행보에 사부대중 모두가 함께 성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불자여러분께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 충만 하옵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65(2021)년 3월 1일
사단법인 한국불교조계종 종정 설국 무명

사단법인 한국불교조계종 제3대 종정
설국 무명 대종사
취임전 부촉기념 설법
“업의 그릇을 비워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방대해서 8만 4천 가지나 된다.
불자들은 이 많은 경전들을 찾을 수도 없고 읽어볼 수도 없다.
모든 경전의 가르침들은 인간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부처님이 이 많은 경을 직접 설한 것도 아니다. 그중에는 제자들이 하신 말씀도 있고 누대에 걸쳐서 많은 선지식들이 집대성한 것들도 있다. 경전은 인간의 고뇌, 외로움, 분노, 행복 등 진리의 말씀들로 가득하다.
그중 하나가 《백유경(百喩經)》이다. 5세기경 인도의 승려인 상가세나[僧伽斯那) 스님이 쓴 《샤타바다나수트라》를 그의 제자인 구나브리티가 한역(漢譯)하여 백유경 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재미있는 설화와 비유 등 아흔여덟 가지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고대 인도에서는 불교에 반하는 외도(外道)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민중들은 불교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상가세나 스님은 적절한 비유를 통해 민중들에게 쉽게 불교 사상을 이해시키고 삶의 교훈을 주기 위해 백유경을 지었던 것 같다. 오늘날에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재미있게 읽히고 있는 경전이다.
그중 우화 한 토막을 소개하겠다.
한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제자에게 잔치에 쓸 그릇이 부족하니 옹기를 만들 장수를 데려오라고 했다. 제자는 마을로 가는 도중, 나귀 등에 옹기를 싣고 가는 장수를 만났다. 그 순간 나귀가 발을 헛디뎌 옹기들이 땅에 떨어져서 모두 깨지고 말았다. 옹기장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이것을 본 제자가 옹기장수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그리 슬피 울고 있습니까?"
“그동안 고생하면서 옹기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장에 가서 팔려고 했는데 이놈의 나귀가 그만 발을 헛디뎌 모두 깨뜨려 버렸으니 허망해서 울고 있습니다.”
제자는 그 말을 듣고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옹기장수가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을 다해 만든 많은 그릇들을 단 한순간에 깨뜨려 버렸으니 이 나귀야말로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옹기장수여 울지 마세요. 당신의 나귀는 훌륭한 짐승입니다.
당신이 오랜 시간 만든 옹기를 찰나에 모두 깨뜨려버렸으니 나귀야말로 훌륭하지 않습니까? 옹기 대신에 그 나귀를 제가 사겠습니다.”
옹기장수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제자는 옹기장수를 데려오라는 스승의 말은 까마득하게 잊고 나귀를 끌고 절로 돌아왔다.
그를 본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이놈아, 옹기 장수는 데려오지 않고 웬 나귀를 끌고 왔느냐?"
“스승님, 이 나귀는 옹기장수보다도 더 뛰어납니다. 옹기장수가 만든 옹기를 한순간에 모두 깨뜨려버릴 정도로 힘이 세니까요.”
스승은 혀를 끌끌 차면서 야단을 쳤다.
“이 미련한 놈아. 나귀는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옹기를 깨뜨리는 일은 잘할지 모르나 옹기를 만들 수 있는 재주나 지혜가 없으니 100년이 걸려도 옹기 하나 만들지 못하는 짐승에 불과하지 않느냐.”
어리석은 제자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머리가 좋아서 출세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은 머리를 잘못 써서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눈앞의 것만 생각하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중 가장 큰 업이 어리석을 치라 했다.
진리에 어두운 번뇌라고 해서 '치암(癡闇)이라고도 부르며 문안에 갇혀서 전혀 소리를 듣지 못함을 일컫는다. 남에게 욕을 하는것, 주먹을 휘두르는 것, 거짓말을 하는 것, 사기를 치는 것, 사음을 하는 것도 모두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행하는 어리석음이 원인이다. 그러므로 업은 자신이 지고 가야 할 평생의 짐이다.
업은 크게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으로 나뉜다. 그런데 알고 저지르는 업보다 모르고 저지르는 업이 더 무섭다. 왜 그럴까. 알고 저지르는 업은 참회하여 고칠 수 있지만 모르고 업을 저지를 땐 자신이 한 일이 나쁜 짓인지 좋은 짓인지조차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나중에 더 큰 악업을 짓는다.
제자가 그런 경우인데 무지로 인해서 악업을 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탐진치 삼독 중 가장 큰 업을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어리석음은 수행자들이 성불을 이루는 데 가장 큰 장애물로,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바른길인지 잘못된 길인지 빨리 판단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게 한다.
부처님께서 어리석음인 무명과 치암을 가장 경계하라고 하셨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어리석지 않은가. 업의 그릇을 빨리 비우지 못하면 결국 어둠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제3대 종정 설국 무명 대종사
■무명선사 수행이력

·부산 금정산 회룡선원에서 출가
·무명사 회주
·회룡선원 선원장
·무명사불교대학 학장
·고헌산 불교성지 조성 추진위원장
·국제구호단체 <세계일화> 회장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원 동림회 수석부회장 역임
·무명스님지구촌행복재단 이사장
·불교청소년인재개발원 원장
·종교세계신문사 고문
·BTN불교TV ‘그대 알겠는가?’ 정기법문 진행

■저서

·무명큰스님의 선 이야기 <허공 가득 연꽃 피우다>
·<업의 그릇을 비워라>
·365일 마음공부
·신비의 도량 무명사

■포교명상음반

·<우주가 열어준 만남> 제작

한국불교종단연합회 제4대 총재 설국 무명 대종사 취임수락 법문
불교는 무엇이 다른가
불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기도를 열심히 하면 정말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 있는가이다. 사실, 나는 이 같은 질문을 받으면 실로 난감하다. 가피가 있다고 해도 오해를 받을 것이고 없다고 해도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기도를 한 뒤 많은 사람들이 가피를 받았다고 말한다.
불교는 전생에 지은 업이 현생으로 이어지고, 현생에 지은 업이 내생으로 이어진다는 연기(起)의 종교이다.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인과법을 매우 중시한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 만약, 육체의 소멸이 현생의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힘들게 살지 않고 재욕, 식욕, 색욕, 명예욕, 수명욕인 '오욕락'만을 추구하기 싶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니 자식을 낳을 필요도 없고 또한 선업(善業)을 쌓을 필요도 없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 동안 오직 쾌락만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런 삶을 산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야말로 지옥이 될 것이다.
불교는 결코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이 오늘 한 행동은 반드시 내일로 이어진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영혼의 세계가 있고 이것이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진다는 사상이 불교의 장점이다. 비록 과거 생과 현생의 삶이 자신이 지은 죄업으로 인해 힘들다고 하더라도 기도하는 삶을 살면서 선업을 쌓아 업장을 지운다면 반드시 큰 복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불교는 신에 의존하는 타력(他力)의 종교가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으로 복을 구하는 자력(自力)의 종교임을 나는 자주 강조한다.
물론,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그동안 나는 절에서 죽음을 앞둔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목격해왔다. 그들은 지금 당장 숨이 끊어지는데도 재물과 명예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왜 그럴까. 내세의 삶을 은연중에 강하게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사람은 동물과는 확실히 다른 내세관을 가지고 있다.
생물학자 르콩트 뒤 노이(Lecomte du Noiuy)'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본 죽음은 육체의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진화의 한 과정이기 때문에 죽음은 자연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얼 말하는가. 육체의 소멸로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진화를 통해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내생의 삶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곳에 필사적으로 돌아와서 알을 놓고 마지막 생을 다하는 것처럼 사람의 육신도 소멸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한갓 미물인 연어도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듯이 사람도 어디론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조상을 숭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불자들이 자신이 지은 업장을 지우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참회의 삶을 산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기(氣)의 세계가 어떤 작용을 일으켜서 자신이 원하는 비를 성취하게 해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피이다.
사람들은 가피를 믿는 순간 변화하게 된다. 죄를 지어서는 안됨을 알게 되고, 또한 육체의 괘락과 탐욕, 성냄, 어리석음인 탐진치 삼독'에서 벗어나 보다 참된 삶을 살게 된다. 가피는 딴게 아니라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늘도 바른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이다.
이것이 불교라는 종교가 지니고 있는 최대 장점이기도 하다.
한국불교종단연합회 제4대 총재 설국 무명 대종사